[한기호의 만화 평론] 음란 만화 폐기 청원서 - 불온한 <피노키오>를 시작으로

한기호 문학박사l승인2019.01.22l수정2019.01.2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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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노키오(Pinocchio), 1940 <벤 샤프스틴, 해밀턴 러스크 감독>

경주박물관 입구에는 남산에서 발견된 돌부처의 두상들이 줄지어 늘어서있다. 일제의 횡포로 몸뚱이를 잃은 채 버려진 돌부처들은 하나같이 코가 없다. 무슨 이유로 없어진 것일까? 전국 방방곡곡의 숱한 돌부처들은 그들의 코를 희생해 한민족의 대를 잇게 해주었다. 우리나라 민속풍습에서 아주 엽기적인 것 중 하나가 ‘기자(祈子)’일 것이다. 이것은 아들을 낳기 원하는 부인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오랜 풍습이다. 이 자리에서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거니와 아들을 얻기 위한 치성의 정점에는 돌부처의 코를 긁어먹는 행위가 있다. 돌부처나 돌미륵이나 돌장승으로 표현되는 거룩한 존재들의 성적인 능력을 물려받아 자신의 후손을 생산하기를 원했던 조상들의 간절함이 보인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코인가 하는 문제의 해답은 그것이 가진 성적인 이미지와 상징성에 있다. 얼굴 가운데 우뚝 솟은 코는 몸 중심에 우뚝 자리 잡은 남성의 생식기를 표방한다. 원작이든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든 <피노키오>의 상징성 역시 그 코에 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 <피노키오>의 불온한 상징을 보자.

피노키오의 코는 거짓말을 하면 길어진다. 코가 가진 상징성을 고려할 때 그것이 길어진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게다가 길어진 코의 끝에는 이파리마저 돋아난다. 겉보기에는 생명력 없는 나무인형이지만 코만 길어지면 왕성한 생산력이 가능한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는 장면이다. 피노키오의 아버지 제페토가 생식능력이 없는 노인으로 등장하는 것에 비해 피노키오는 건강한 이파리를 자라게 만드는 코를 가지고 있다. 생산력이 왕성한 피노키오는 생식능력이 없는 그 아버지의 질서를 극복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코는 왜 거짓말을 할 때만 길어지는가 생각해보자.

거짓말은 인식 능력의 증거이다.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으며 그것을 의도적으로 바꿀 수 있는 수준의 인식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세계가 어떤 질서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만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식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 뱀의 거짓말에 넘어가 신이 금지한 과일을 먹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짝을 여성으로 인식하여 후손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성서의 이야기를 보자.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인지하게 된 단초가 된 것이 뱀의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곧 인식능력이다. 성적 각성의 증거다.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성적으로 충분한 인식 능력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코가 길어져야만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페토는 피노키오를 학교에 보내려고 한다. 움직이는 나무인형을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이다. 그러나 욕망 덩어리로 태어나 욕망의 상징만이 쑥쑥 자라나는 피노키오가 학교라는 기관에 순응하여 온순하게 사회화의 길을 걷지 못하고 친구들의 꾐에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모든 인간의 짐승 같은 욕망이 결집된 ‘기쁨의 섬’에 스스로 걸어 들어간 피노키오와 또래 아이들의 행동들을 보자. 그들은 그곳에 모여 음주와 흡연과 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음주, 흡연, 집단 폭력의 원시적 남성성이 흘러 넘치는 이 만화를 모든 어린이들에게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보여준다는 것은 무척 놀라운 일이다. 남성성의 본능으로 가득한 그곳에서 오래 머물게 되면 당나귀가 될 수밖에 없다. 억누르지 못한 성욕의 분출을 상징하는 동물로 당나귀만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의 생식력은 힘차게 뻗는 발차기나 울부짖음과 함께 우뚝 선 기다란 귀로 드러나고 있다. 학교에 가서 학습으로 순치되지 않는 욕망은 그 속살을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는 법이다. 다행스럽게도, 아니 그의 여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피노키오는 완전히 당나귀로 변신하지 않고 그곳을 도망쳐 나온다.

<피노키오>의 마지막 무대가 되는 곳은 깊은 바다 밑에 누워있는 거대한 고래의 어두운 뱃속이다. 잘못을 뉘우친 피노키오가 자신을 찾으러 떠난 아버지와 만나는 곳이 바로 고래의 뱃속이다. 신화의 세계에서 물은 곧 대지와 등가적 의미를 갖는다. 제주도 <삼성 신화>의 주인공들은 삼성혈이라는 땅에서 곧바로 튀어 오르는 방식으로 태어나며, 박혁거세왕의 왕후가 된 ‘알영’은 우물에서 올라온 계룡의 옆구리에서 태어나며, 부여의 금와왕은 ‘곤연’이라는 큰 못의 바위 아래에서 태어난다. 바다에 빠진 심청이 연꽃으로 환생하거나 연못에 빠져 죽은 장화, 홍련, 콩쥐 등이 인간으로 되살아나는 여정도 같은 맥락이다. 고래 뱃속에서 삼일을 갇혀 있다가 육지로 나온 성경의 요나도 있지 않은가. <피노키오>에서 신화적 공간인 바다 밑에 거주하는 고래는 ‘지모신(地母神)’이며 ‘가이아’이다. 대지의 신의 자궁 속에 갇혔던 피노키오가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의식적 죽음을 거치는 과정을 보자. 축축하고 어두운 고래 뱃속은 지모신의 자궁이다. 그 거대한 자궁 속으로 엄청난 숫자를 과시하며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밀려들어오는 다랑어 떼가 상징하는 바는 지극히 자명하다. 공격적으로 밀려드는 다랑어의 난입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고래는 불을 뿜어내며 피노키오를 토해내는 과정을 연출하게 된다. 지모신 가이아의 자궁에서 격렬한 출산의 과정을 거쳐 인간들이 거주하는 세상으로 돌아오는 피노키오. 결국 이러한 의례적 절차를 거친 후에야 나무인형으로서의 피노키오는 죽고 건강한 인간 아이 피노키오가 재생한다. 피노키오는 신화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엄청난 성적 비유와 상징을 동원한 음란한 애니메이션이다.

마침 근래에 와서 한국 사회가 유례없는 도덕성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한 어린아이가 쓴 동시의 내용과 삽화가 지나치게 잔혹하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자 출판사에서는 해당 시집을 전량 회수하여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문학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따위야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나오는 작품 정도가 아니라면 재고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니, 이왕에 전 사회적인 도덕성 수준의 고결함을 보여준 바에야 이제는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 음란한 만화 역시 전량 회수하여 폐기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노골적으로 음란한 만화들을 폐기하는 것이야 ‘동방예의지국’에서 지극히 합당한 일이니 두 번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모름지기 <피노키오>와 같은 사악한 애니메이션에는 더욱 주의해야 할 일이다. 이 만화는 신화적 구조의 틀을 탄탄하게 유지한 채 아름다운 주제 음악과 시대를 앞서는 화려한 색채와 순진무구하게 커다란 눈망울을 한 등장인물들을 대거 출연시켜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아이들을 현혹하고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 음란성과 반사회성을 촘촘하게 심어주는 패덕한 자본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부디 <피노키오>를 전량 회수하여 시급히 폐기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도덕성 수준을 한층 더 격상시켜야 한다고 본다. 언제까지 우리 대한의 순수한 어린이들에게 피노키오의 그 음란한 코가 쑥쑥 자라나는 부도덕한 동영상을 시청하게 할 것인가. 이 사회의 도덕적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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