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만화 평론] 새 시대를 위한 주례사 - <야옹이와 흰둥이>의 힘 -

한기호 문학박사l승인2019.01.18l수정2019.01.1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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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옹이와 흰둥이, 윤필 작가)

눈을 어지럽히는 화려한 채색도 없다. 몇 세기를 건너뛰거나 우주와 차원의 경계를 넘나드는 장대한 규모의 서사구조도 없다. 너무나 단순해서 때로는 무성의한 낙서처럼 보이는 이 웹툰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렇게 호기심으로 접근한 만화에서 ‘고양이와 개’라는 상극의 커플을 만났다. 유전적 결합이 불가능한 이종 간의 동거는 너무나 다른 세계를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함께 하는 결혼제도와도 닮았다. 한 집안에 사는 개와 고양이가 같은 상자 안에 드러누워 밤을 지새우는 것만큼이나, 그러니 무채색의 만화를 화려한 결혼식의 주례사로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결혼을 앞둔 커플들은 각오하시라. 결혼한 부부들은 반성하시라. 여기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새 시대의 힘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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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는 부부에게 <야옹이와 흰둥이>를 소개합니다. 부부들은 모두 이렇게 사시길 바랍니다. 이들처럼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이들을 통해 퇴색해버린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사랑은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보편적으로 고양이와 개는 잘 화합하지도 않고 함께 어울려 다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함께 삽니다. 그냥 함께 살지 않습니다. 열심히 삽니다. 로드 킬의 생존자인 야옹이와 성대수술을 당하고 주인에게 버림받은 흰둥이가 그들입니다. 이들이 어렵게 만난 새 주인은 빚 때문에 잠적해버렸습니다. 주인의 빚을 떠안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비정규직의 삶일 수밖에 없지요. 다행히 말을 할 수 있는 야옹이조차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대형마트의 시식 담당, 빵집 아르바이트, 레스토랑 서비스 등입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흰둥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제한적입니다. 일용직 노동자, 시급 아르바이트가 전부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빚쟁이에게 갚아야 할 빚은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절망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의 열심이 주변 사람들을 서서히 변화시킵니다.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힘이 사랑이라면 이들은 그것을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랑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문구는 수정해야 합니다. 사랑은 ‘주변 사람들 바라볼 줄 아는 것’입니다. 서로가 상대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거나 같은 목적에 매몰되어 다른 사람 한 번 돌아볼 틈도 없이 사랑한다면 그것은 이기심입니다. 야옹이와 흰둥이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시급한 문제에 당면했음에도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은 모두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들입니다. 자신의 몫으로 받은 음료수를 일용직 노동자 할아버지에게 몰래 갖다 주는 흰둥이나, 시급보다 비싸서 차마 사지 못했던 커피를 얻게 되자 함께 일했던 근로자에게 갖다 주기 위해 달려가는 야옹이의 모습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살아있으나 살아있는 존재로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야옹이와 흰둥이가 기억하고 눈길을 주는 사람들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대형마트의 감정 노동자, 높은 학력을 가지고도 일용직으로 힘겹게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자신의 목소리로 전화조차 할 수 없는 장애인,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겹게 시식코너를 맴돌아야 하는 주목받지 못하는 복싱 선수, 자신의 꿈을 잃어버리고 습관적인 숙취에 시달린 채 음료수 상자를 배달하는 청년,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가진 소녀, 피자나 신문 등을 배달하는 사람들, 짧은 시간의 틈새를 이용해 전단지를 돌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야옹이와 흰둥이는 이들을 바라볼 줄 압니다. 흰둥이와 함께 일하던 노인이 노동으로 힘겹게 모은 돈을 대학에 기부하고 독립유공자인 아버지의 묘소에 참배한 후 다시금 대형 교회 신축 공사장으로 돌아가는 장면에 이르면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사랑과 정의의 개념이 단 몇 칸의 만화 속에 응축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한없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나 자신이나 내 가족만이 아니라 내 주변에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가지는 것, 그들에게 작은 마음 한 자락을 내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입니다. 야옹이와 흰둥이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면 누군가 이들의 집 앞에 펭귄의 알을 버려두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난한 집에 자식이 많다고 하던가요? 야옹이와 흰둥이는 자신들도 살아가기 버거운 상황에서 펭귄의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고생하고 그 새끼 펭귄을 먹이느라 곤욕을 치릅니다. 그 힘겨운 가정 속에서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습니다. 신세타령을 하지도 않지요. 주어진 알을 부화시키고 새끼를 키우기 위해 자신들의 삶을 희생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자식을 위한 헌신과 봉사가 그런 것이겠지만 이 장면은 언뜻 입양가족의 모습을 닮아있는 것만 같습니다. 새끼가 자라 독립하도록 야옹이와 흰둥이가 한 일이라고는 아무 보상도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인 헌신이었습니다.

지금 부부이신가요? 부부가 되고자 결혼을 하시나요? 그렇다면 이들처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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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케케묵은 주제인 ‘사랑’을 소재로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주례사를 쓰고 나니 마음만 잔뜩 무겁다. 주례사를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은 <야옹이와 흰둥이>에게 주목하지 않으며, <야옹이와 흰둥이>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은 아예 주례사를 들을 수조차 없는 세태이기 때문이다. 2030세대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였는데 어느덧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5포세대’가 되었고, 이제는 ‘꿈’과 ‘희망’마저 포기하는 ‘7포세대’가 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젊은이들이 포기하거나 포기할 생각이 있다고 답변한 항목들 하나하나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온 세상을 떠안겠다는 자신감으로 자기만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외치며 살아도 오히려 부족할 젊은이들이 자신의 꿈마저 포기하도록 만드는 사회란 도대체 어떤 괴물인 것일까?

<야옹이와 흰둥이>는 도저히 화합할 수 없을 것 같은 대상들이 만나,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을 이겨가면서, 도저히 살아가기 힘들 것 같은 세상을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조금씩 변화시킨다는 좋은 만화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만화는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 이런 만화가 더 이상 그려질 필요가 없는 사회라야 한다. 이 나라의 ‘야옹이’들이 더 이상 방구석에 고개를 파묻은 채 우울증에 떨지 않는 세상, 이 나라의 ‘흰둥이’들이 항상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려 만세를 부르는 세상, 그런 세상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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