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만화 평론] 만화에서 찾은 국무총리 - 이 사람을 쓰소서!

한기호 문학박사l승인2019.01.15l수정2019.01.1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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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을 걷는 선비, 조주희 / 한승희 작가 )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하더라도, 평소 뉴스보다는 드라마를 즐기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요즘 일어나고 있는 중대 사건을 모를 수는 없을 것이다. 온갖 부정부패의 전력을 화려하게 자랑하는 분께서 국민들의 비난 여론을 무시하고 국무총리라는 자리에 오르시더니 매우 모순적이게도 스스로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뜻하지 않게 그 흉탄에 맞아 역사상 최단명 총리의 오명을 남긴 채 장렬하게 넘어지셨다. 국무총리의 단명은 아무 문제도 아니다. 국가의 대표성을 가진 인물의 치욕스런 부정행위와 그에 따른 몰락에 대해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모멸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치유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만화를 많이 읽어도 현실은 늘 만화를 능가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왔지만 이번 경우에는 오히려 현실을 이기는 대책으로 만화를 읽어보고 싶다. 지극히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비록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만화 주인공이지만 우리나라의 총리로 조금도 손색이 없기에 천거해본다. <밤을 걷는 선비>의 주인공 김성렬이다.

그는 조선조 말엽 청나라에 갔다가 우연히 흡혈귀에게 물려 자신도 그렇게 되어버린 비운의 선비이다. 비록 불행하게도 흡혈귀가 되었으나 사람을 함부로 해치거나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고 충직한 노비가 공들여 모아다 주는 피를 마시며 깊은 산골에 파묻혀 책을 읽으며 살아가던 중 남장을 한 채 살아가는 비운의 여인 양선을 사랑하게 된다. 아직 이 만화는 10권까지밖에 출간되지 않아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잔뜩 남아있으나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 양반이야말로 우리나라 총리감에 적합하다는 생각에 추천을 하게 되었다.

세상은 언제고 흡혈의 아수라장이다. 누군가의 피를 빨아 마시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적자생존의 살육 현장.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모자식이나 친구도 배신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조차 무시한 채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어 상대방의 목을 물어 피를 빨아야만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총리가 받은 뇌물의 액수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으니 그 정도는 용서해줘야 한다는 여론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다. 어차피 남의 피를 빨아야 하는 세상에서 그 정도 빨았으면 이해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심리이리라.

그러나 김성렬을 보자. 그는 절대 다른 사람의 목덜미를 깨물어 피를 빨아대지 않는다. 노비들이 십시일반 모은 피를 소중하게 받아 마신다. 국민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세금으로 정해진 월급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청렴한 총리의 자질이 엿보인다.

전통적으로 흡혈귀는 막강한 힘을 가진 불사불멸의 존재로 그려진다. 그것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요인이다. 짧은 생을 마감하고 사후 세계에 대해 명징하게 알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 인간에게 영원불멸이니 영생이니 하는 단어들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게다가 영원한 젊음까지 유지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흡혈귀들은 대체로 현재를 즐기고 쾌락을 누리는 존재로 그려지기 마련이다. 존재의 의미나 삶의 고뇌 따위는 없다. 자신이 가진 힘과 젊음과 영원한 시간을 누리면 그뿐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이 그동안 국민들 앞에 꾸준하게 보여준 모습과 다를 바 없다. 흡혈귀는 영원불멸이기라도 하지만 정치인들은 영원하지도 않을 권력을 안고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면서도 그 힘이 영원하리라 확신하는 어리석은 존재들처럼 행동한다.

여기 김성렬을 보라. 그는 영원불멸의 존재이면서도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끝없이 고뇌하는 인간이다. 그가 쌓아둔 서책의 높이는 결국 그의 고뇌와 비례한다. 자신이 생명을 구해준 여인이 결국은 기생이 되어 자신을 유혹하며 끝없이 자기의 피를 빨아 흡혈귀가 되게 해주기를 희망해도 그 후에 닥칠 고통과 번뇌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극도의 인내를 발휘하는 존재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매 순간 고뇌하고, 인간과 괴물 사이에서 존재론적으로 번민하는 김성렬은 이미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고민하고 갈등하기 위한 충분한 내성이 쌓인 인물이다. 존재론적 회의에 사로잡혀 날마다 자신을 되돌아보며 국민들을 위해 밤을 밝혀 고뇌하는 정치 지도자의 품성을 갖춘 사람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아는 한 흡혈귀는 가장 잔인하고 강렬하며 추악한 존재임과 동시에 에로틱하기까지 하다. 피에 대한 갈증이 끓어오르면 송곳니가 길게 자라난다. 무방비로 노출된 여성의 하얀 속살에 거침없이 꽂히는 그의 굵고 기다란 송곳니. 그리고 게걸스레 목덜미를 덮치는 입술 아래로 진하고 붉게 흘러내리는 피. 이처럼 강렬하고 자극적인 성적 이미지가 흡혈귀를 대중문화의 중심에 놓이게 한다. 에로스와 타나토스라는 인간 욕망의 큰 줄기를 한 몸에 지닌 채 위태롭게 생과 사의 경계를 걷는 사악한 존재로서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이처럼 감각적으로 구현하는 주인공을 찾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흡혈귀의 피에 대한 굶주림은 성욕과 잇닿아 있으며 주체할 수 없이 드러나는 탐욕 역시 그러하다. 그에게서 순수한 사랑을 찾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네 정치가 또한 그렇지 않은가? 국민을 위한 헌신과 봉사라는 탈바가지만 뒤집어썼을 뿐 본질은 인간의 권력에 대한 욕구의 정점에 옥좌를 틀고 앉아있는 것이 대통령이고 국무총리라는 자리이다.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들을 추구하게 될 때 나타나는 비극적 결말은 이미 우리 역사가 잘 알려주고 있다.

밤을 걷는 선비 김성렬은 어떤가? 그는 우연히 만난 남장 여인 양선에게서 순수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양선은 역모로 몰려 멸족해버린 가문의 버려진 여자아이였다. 그녀는 조선조 사회에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기에 남장을 한 채 서쾌(책 거간꾼)가 되어 청나라로 떠나고자 애쓰고 있다. 신분이나 가문이나 돈이라는 그 어떤 배경도 없이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하지도 못한 신분의 양선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김성렬, 그는 그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본능적 욕망과 끝없이 싸우는 처절한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대단한 능력자, 엄청난 재력가, 탁월한 전문인을 기다릴 마음도 없고 여력도 없다. 그저 아무런 욕심 없이 주어진 직분에 만족하며 국민들을 위한 애정을 품고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봉사자를 원한다. 자신이 가진 힘과 권력이 비록 크고 많다 해도 그것을 과시하지 않으며 자신보다 한없이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국민들을 무한한 인내로 품어주고 사랑해주는 최소한의 인성을 소유한 지도자를 원한다. 그것이 결국 자신을 망가뜨리는 일이 된다고 할지라도 국민을 지켜내는 일이라면 목숨을 걸 정도로 지고지순한 그런 사랑을 원한다. 국민들의 욕심이 지나친 것일까? 우리는 진정 만화 속 주인공을 총리로 천거할 만큼 지독하게 형편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만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결말이 궁금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은 때로 결말이 너무 투명하게 보여 두려울 때가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재미있고 궁금하게 만들어줄,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만화보다는 아름답고 따뜻한 공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직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믿을 수 있게 해줄 그런 지도자는 진정 만화 속에서만 숨을 쉬고 있는 것일까?

글을 다 쓰고 나니 문득 서글퍼진다. 반만년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임을 자부하는 이 나라 백성으로서 어찌 서양 잡귀신 따위를 총리에 천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서글픈 이 나라의 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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